| 제 4차 콜로키움에 참여해서 질문을 던졌던 김덕기 입니다. 이번 콜로키움에서의 아쉬움은 Q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공헌을 한 Kloppenborg의 Q에 대한 층위 분 석에 대한 중요한 논의가 빠진 점이다. 더군다나 처음 발표한 양방향의 전승이론에 입각해서 Q이론 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발표한 이상일 박사에게 내가 Kloppenborg의 층위 분석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사회자가 이상일 박사에게도 답변 기회를 주지 않음으로써 Q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 아쉬움이 있다. 나의 질문은, 적어도 미국의 Jesus 세미나나 Kloppenborg의 층위 분석은 기독교 기원과 역사적 예수와 관련해서 Q의 본질을 탐구했다는 점에서 콜로키움은 반드시 이점에 대해서 본격적으 로 논의할 수 있는 학자의 논문 발표가 있어야 했다는 확신에서, 비롯되었다. 그나마 이상일 박사의 연구는 Q 탐구의 전제와 Q의 '유대적' 예수상에 기초가되는 단일방향 전승과정에 대한 비판적 논 의로부터 시작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가장 중요한 논점을 던진다. 그는 과감하게 Q가 역사적 문서라 기 보다 문헌 자료 비교의 부산물이라는 도전적인 문제제기와 함께 그의 쌍방향 전승 과정의 전제하 에서는 오히려 예수와 Q가 헬라적 지혜 문헌의 배경하에서 형성될 수 있다는 암시를 제기한다. 그러 나 그의 날카롭고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사회자가 다른 발표자들에게 이에 대한 답변을 유도하 는 재치를 발휘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 질문과 더불어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미국의 예수 세미 나나 크로펜보르그의 층위분석이 헬라적 예수상을 제기한 것이 오히려 타당할 수 있지 않겠는가에 대한 보다 본격적인 질문이다. 나는 Q나 역사적 예수 탐구는 교회의 권위주의적 교리에서 벗어난 예수상을 확립하려는 계몽주 의 정신에서 비롯된 성서학의 한 비판적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이 개념적 장치로서 'Q'와 '역사적 예 수'는 바로 이데올로기화되고, 각질화된 예수상과의 결연한 '불연속성'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이 정 신에서 비롯된 '역사적 예수'나 Q에 투영된 예수상은 이런 의미에서 아이러니칼하게도 단순한 '유대 적 예수상'을 주도적으로 내포하는 한 역사적 예수와 Q의 불연속성에 기초한 비판적 개념을 배 반하는 자기 모순성을 내포한다. 그래서 이번 콜로키움이 암암리에 유대적 예수상을 주도적으 로 옹호하는 Q연구의 내러티브성 연구는 Q를 가설이라기 보다는 단순히 역사적 자료로서 기정사실 화하고 그 비판적 정신을 전혀 계승할 의지를 드러 내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란 점에서 반드시 이번 콜로키움의 방향에 대해서 심각하게 재숙고해야 한다. 이것은 결국 Q에 대한 길들이기를 작심 하는 '정치적' 성격을 다분히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되어 나는 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차라 리 발표된 글들에서처럼 Q의 내러티브성을 연구할 바에는 같은 본문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맥락 에서 연구하면서 십자가처형 기사에서 로마제국, 유대교, 예수운동과 유대 지도자들과의 충돌이 스 토리의 정점에 이르도록 한 복음서의 내러티브의 갈등의 서서상을 극대화하는 것이 훨신 설득력 있 을 것이다. 내러티브의 극적 구조는 플롯에 따르는 주인공의 행동의 파국적 제시에 있기 때문이다. Q에 대한 콜로키움에서는 바로 기존에 알고 있는 복음서와 Q의 메시지 이해의 차이를 극대화하 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까? 핵심 논쟁은 단순히 헬라냐 유대냐의 배경사의 문제에 있지 않는다. 성서의 복음서 만을 통해서 신앙을 독점하여 기득권을 획책하고 또 다른 우상을 형성하려는 세력과의 한 판 대결을 벌이기 위해서 바로 비판적 개념으로서 Q를 창출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이 런 기준으로 볼 때 그래도 Q의 정신에 가장 근접한 논문을 발표한 논문은 이상일 박사의 것이다. 그 런데 그에게 발언권을 너무 주지 않았던 것이다. 다행히 '베리타스' 인터넷 기자가 이를 날카롭게 인 식하고 인터넷에 그의 발표를 중심으로 기사화 했다.('한국신약학회' 치면 포탈사이트에서 뜨게 됨) 나는 그날 감정을 최소화하고 문제를 제기했다. 내가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작년에 열린 조직신학 학회가 주도하였던 Q 콜로키움 보다도 Q의 비판 정신과 창의적 정신, 신학적 고민과 한국 교회에 대 한 치열한 도전 자세를 나타내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작년에 있었던 감리교 신학대학에 서 열린 Q 콜로키움 자료(이정배의 기독교 통합학문연구소와 채수일의 한신대 학술원 신학연구소) 를 갖고 있다. 이때에 김용옥, 유태엽, 김명수 박사가 초대되었다. 김용옥 박사의 최근 책들이 우리 신약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도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내 질문은 그의 책을 읽고 도전이 되어서 클로 펜보르그의 층위설이 가장 중요한 논의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나의 기본 생각에서 그 날 콜로키움에서 질문을 던진 것으로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물론 세 분의 Q 해석이 Q의 비판적 정신을 망각한채 Q를 복음서와 최대한 유사하게 함으로써 Q를 길들이려고 하는데 급급하였는지, 아니면 Q 연구에서 중요시하는 우상파괴적 비판정신과 상관없이 자기 나름대로의 토착화 방식이라고 항변하는 것인지 묻고 싶은 것이다. 이들이 어떤 입장을 취한 다 하더라도 우리는 적어도 신약학회에서 Q를 논의한다고 한다면 Q의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유 산으로서 간주되는 위의 Q의 비판적 정신이 보다 확실하게 나타나도록 유대적 서사성뿐만 아니 라 이 비판 정신이 가장 드러나는 헬라적 지혜의 시적 은유성의 중요성을 보다 치열하게 논의한 예 수세미나와 클로펜보르그의 층위분석을 보다 철저하게 탐구하기를 바랬던 것이다. 우리는 오히려 Q 에 관해서는 아마추어인 김용옥 박사가 Q의 비판적 정신을 계승하여 이를 도마복음을 경유하여 토착 화하려 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점에서 나는 적어도 우리가 Q를 연구하고자 한다면 최근의 몇 중요한 서구학자나 아마추어나 한국학자들이나 Q의 비판적 정신을 계승한 다영한 연구들 과 창의적으로 대화하면서 교회와 평신도에게도 새로운 영적 도전이 될 수 있는 Q 탐구가 한국의 평 신도나 비그리스도인에게도 열리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보다 큰 그림을 그린다면, 나는 Q에 나타난 역설적 비판성은 예수의 비유에 나타난 시적 은유 성, 바울에게 나타난 문화적 전복의 십자가 신학, 삼위일체의 하나님의 혁명성과 함께 모두 하나님 이 제시하는 하나님 나라 도래의 철저한 급격성에 대한 영적 심오한 성찰을 제공함으로써 기독교 신 학적 비판정신과 영성과 개혁신학에 꼭 필요한 자양분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이러한 위의 생각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콜로키움이 하나님 나라의 철저한 급격성이 심오하게 성찰될 수 있는 핵심 포인트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그리고 치우치지 않는 콜로키움이 되기를 바랍니 다. 샬롬. 추신: 주최측에는 격려를 위해 쓰는 것이니 오해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

